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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픽스 부작용 이기고 금연 1년 후기(약 먹으면서 담배 끊기, 메스꺼움은 조금?)

by 통합메일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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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치료제 챔픽스

우리의 뇌에는 니코틴 수용체라는 부분이 있고, 흡연자는 이 니코틴 수용체라는 그릇이 제법 커진 상태다. 담배를 피워서 니코틴을 주입해서 이 니코틴 수용체라는 그릇을 채우게 되면 쾌감을 느낀다. 챔픽스는 니코틴 없이도 그 니코틴 수용체를 채워준다. 니코틴 수용체가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 것인데, 니코틴 수용체가 비어있지 않다는 신호를 받기 때문에 흡연에 대한 욕구도 감퇴한다. 이를테면 우리의 뇌를 기만하는 약인 것이다.

 

부작용이 있었다고 해야할지 없었다고 해야할지..

굳이 말하면 있었고, 오히려 그것 덕분에 담배를 끊을 수 있던 게 아닐까.

 

[무엇이 끝났는지는 몰라도 자꾸만 무언가 새롭게 시작된다.]

 

대체 무엇을 쓰고자 했던 걸일까? 문장을 보니 굉장히 큰 의미를 담아서 적어놓은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금연 1년을 기념하는 글을 쓰려고 펼친 노트에 쓰인 이 제목을 보니 제법 잘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되어 그 아래에 그대로 글을 적는다. 블로그에 적을 제목은 챔픽스 금연 1년(365일) 후기: 부작용은 없었다.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오래됐나? 싶지만 스마트폰 어플에 따르면 나는 1년 전 이즈음에 챔픽스를 통해 금연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 시간은 나에게 어떻게 남았는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 것은 매우 오래됐다. 분명히 금방 끊으려고 했는데 하루이틀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새 20년을 넘겨버렸다. 맙소사 20년이라니. 어느새 내 인생의 절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는 흡연자로 살아버렸구나. 더 무서운 것은 여차했으면 지금도 흡연자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창 흡연에 취해 있을 때는 금연자가 되는 게 두렵다. 흡연의 유해성에 대해 동의하고 심지어 입으로는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다. 금연을 고려하고 있으면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어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럴리 없겠지만 마치 어떤 기생충이나 악령 같은 것이 발생해서 그것이 내 안에서 도사리면서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의 이성적 자아와는 전혀 다른, 나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사고/판단하는 존재가 나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을 뒤집어 씌우고, 뜻을 모아 다 같이 금연 내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흡연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때는 나의 의지였을지 몰라도 나오는 것은 결코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돌이켜 보면 저주 같기도 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볼 때 이러한 저주에 걸리는 게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게 노출된 환경이었다고(주변에 흡연자가 많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저주가 아니었으면 내 삶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거라고,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었을 거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사실 그러한 저주의 정체는 결국 다름아닌 [나의 선택]이고, 비흡연자로서의 나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을지의 여부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흡연자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까지도 열심히 신나게 혹은 근근히 담배를 피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의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이웃과 스스로에게 끼치는 해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감수하는 따가운 시선과 불편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고난과 시련이 있기에 함께 오래 담배를 피운 이들 사이엔 어느샌가 전우애 비슷한 게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담배를 끊으니 그제서야 나는 그것이 서로가 상대방을 굉장히 수단시하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오히려 올바른 태도로 있는 그대로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때로는 흡연자들 사이에서 수다를 떠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실감하게 됐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아직 흡연자였을 때는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주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던 깨달음이다.

 

끊으려는 시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모든 실패들은 그냥 의지의 부족이라는 혐의가 붙여진 채로 기약없는 지하 감옥에 수용됐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시도한 게 챔픽스였다. 사실 챔픽스의 존재는 몇 년 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야만 복용할 수 있는 전문 의약품인만큼 병원갈 시간이 없고, 병원 가기 싫다는 핑계로 또 기약없이 지연됐다. 세간에 알려진 이 약의 부작용은 흡연자들로 하여금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좋은 명분을 제공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쯤되면 지금까지 나의 실패에 씌워진 의지의 나약이라는 혐의는 사실 [비겁함]이었다는 게 제법 명확해진다. 그렇다. 나는 의지가 나약해서라기 보다는 비겁했기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했고, 담배는 끊지 않았던 나는 비겁한 인간이었다. 나에게 담배를 끊는다는 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담배를 피운다면 아마 흡연자들에게는 참 좋은 세상일 것이다. 그래서 미성년자들도 담배 피우기 좋았던 그 옛날이 흡연자들에게는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흡연자가 더 많아질 수록 흡연자는 살아가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들이 서있을 땅이 줄어들고, 담배를 피울 곳이 피울 수 있는 시간이,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흡연자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건 그런게 아니었을까. 담배는 필연적으로 관계의 단절을 유도한다. 냄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흡연자의 일상은 비흡연자의 일상과 완벽하게 조화될 수 없는 지점이 일상의 곳곳에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흡연자로서 흡연하기 위해 자리를 떠야하는 필연적 단절을 자주 마주하게된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공감하겠지만 흡연자가 문득 참 힘들 때는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 문득 가족들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해야 하는 사오항에서 흡연자는 참 힘들다. 평소처럼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이를테면 명절이나 휴가 같은 것들이다. 행복해야 하는 시간이 흡연자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담배는 흡연자의 일상을 참 딱딱하게 경직시킨다.) 그래서 자꾸 바깥으로 나갈 구실과 핑계를 만들어낸다. 쓰레기를 버리거나, 세차를 하거나, 주말에도 출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흡연을 하는 그 마음이, 그 수고가 딱하기도 하고, 스스로 처량하기도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관계론적인 차원에서 비흡연자와의 공동생활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유는 상술했다. 담배 냄새도 냄새지만, 흡연으로 인해 단절되는 시간과 맥락이 더 큰 문제다.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온전한 즐거움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흡연자는 원하는 대로 담배를 피우지 못해 괴롭고, 비흡연자는 결국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나 맥락의 단절 때문에 괴롭다.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서로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 고통을 해소하려면 담배를 끊거나, 서로에 대한 관심을 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괴로울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흡연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러한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챔픽스는 내 머릿속의 그 무언가를 상당히 많이 치유해줬다.(지금 생각하면 흡연하던 당시의 나는 뇌에 어떤 질병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치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담배를 끊는 데 약은 상당한 도움이 됐지만, 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사람의 끈질긴 노력. 그것 밖에는 없다. 아내가 그렇게 집요하고 영리하고 끈질기게 나를 갈구고 괴롭히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내의 간절함 때문에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문제적 구조를 직시할 수 있었고, 그러한 구조를 직시했기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단 마음을 먹으면 병원에 가서 금연 프로그램의 궤도 위에 올라서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가장 어려웠다. 어찌 보면 헬스장 가는 거랑 비슷한가.

 

그때부터 시작된 일주일 동안의 준비기간이 참 좋았다. 적은 용량의 약을 주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이 기간이 좋았던 이유는 금연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있게 대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몇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해도 아내는 금연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나에게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1주차 때는 적은 용량의 약을 먹고, 평소처럼 담배를 피우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리고 2주차에 들어가도 부작용이 없으면 약의 용량을 늘려줄 뿐 굳이 어서 빨리 담배를 끊으라거나, 절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1~2주에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나 약사에게 아직은 피우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게 좀 민망했을 뿐이랄까? 챔픽스의 취지 자체가 스스로 담배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금연 시도자가 금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적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젖을 떼듯, 입에서 완전히 담배를 뗀 것은 3주차였다. 총 12주차의 프로그램인데 3주차 때 이미 끝나버렸다.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약 자체의 효능도 있었지만, 담배를 뗸 결정적 동기를 제공해 준 것은 약의 부작용이었다. 자살충동이나 불면증이나 우울증 같은 것은 없었지만 뭐랄까. 약을 먹으면 헛배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불편했다. 이걸 메스꺼움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속쓰림 같이 느껴졌다.

 

약의 효능 때문에 담배의 매력은 꾸준히 약해져 가는데, 담배를 끊기 위해 먹는 약이 내게 선사하는 이 불편함은 꾸준하면서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상에 엄청 큰 지장을 주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약 먹어야 할 시간이 되면 '먹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호흡 한 번 하고 먹는 그 정도의 부담이었다. 그래도 먹으면 플라시보 효과도 생겨서 괜히.. 담배를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날 그래서 나는 담배를 끊었다. 이제는 그만 피워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거창하게 담배랑 라이터를 버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담배와 라이터는 내 책상 서랍 안에 들어있다. 관심이 없어져서 버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담배 친구들끼리 같이 담배 피우러 나가던 발걸음이 끊어졌다. 대신 그냥 맥락과 호흡을 끊지 않고 계속 일을 한다. 어차피 나는 사람보다는 담배가 좋아서 피우던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젠 안 피워야겠다. 이젠 안 피워도 되겠다. 그리고 그러면 챔픽스도 안 먹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계산이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서 떼고, 내가 대체 왜 이걸 계속 먹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며칠 뒤에 약도 그만 먹었다. 그렇게 나는 금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금연의 궤도에 올라 위태로운 공전을 시작하는 것과도 같았다.(약은 끊었지만,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환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병원은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12주의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면 나중에 공단에서 환급을 위한 안내문이 우편으로 날라온다.)

 

지금 담배를 주제로 담배에 대해 장문의 글을 쓰고 있으니 아무래도 내 머리는 참 오랜만에 담배 생각으로 가득하다. 피우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오래됐지만,, 전혀 안 피우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좋은 기억들, 그리고 담배 자체가 나에게 선사하던 화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쾌감의 기억들은 여전히 흔적으로라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피우겠는가?'라는 질문이라면, 그러한 질문은 이제 내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겨우 저주스러운 구조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다시 [담배를 피울 줄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힘겹게 얻은 이 축복스런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하는 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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