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용 후기

나의 만년필 기행(펠리컨M400, 세일러 프로핏 스탠다드, 파이로트 헤리티지92, 프레라, 파이로트 데시모, 영웅616, 영생 601, 영생601A)

by 통합메일 2020. 12. 31.
반응형

만년필은 절대 품질과 가격이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20만워닝 넘는 제품에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느덧 펜의 수가 감당 못할 정도로 많아졌다. 특히 최근에 중국산 펜들에 눈을 뜸녀서 그리고 일본의 저가 만년필과 일회용 만년필(프레피)들을 들이면서 정말 많이 늘어났다.

펠리컨M400 너 왜케 비싸졌니..

처음부터 펠리컨을 선택한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누군가 첫 만년필로 펠리컨을 선택하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 저가 만년필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펠리컨 M400은 당시로서는 가장 가성비가 좋았다. 세일러나 파이로트의 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돌아보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펜에 대한 기대를 낮춰온 것 같다. - 그러니까 펠리컨 M400의 경우에는 EF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얇음을 경험할 수 없었고, 또 필감도 그렇게 탁월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량이었는데 그냥 계속 썼던 것 같다. - 근데 지금은 보증서가 없어서 고치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신품가가 30만원 넘게 오른 것 같던데.. 닙이라도 떼서 팔아야 할까.

 

파이로트 프레라 만년필 - 3만원대
파이로트 헤리티지92 - 이것도 지금은 꽤 비싸네

비싼 거 쓴다고 해서 별 것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일까? 금으로 만든 닙이 주는 만족도는 분명히 있었지만, 인간으로서 나를 더욱 애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다. 나는 깨달았다. 한 가지 펜만 잘 키워서 평생 쓰기에는 이 만년필 바닥이라는 곳은 너무나도 많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이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파이로트 프레라 세 자루다. 배럴이 들여다 보이는 만년필은 펠리컨을 거쳐 파이로트 헤리티지 92로 이어지지만 반투명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배럴 전체가 투명한 제품은 프레라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름하여 데몬이다. 겉에서도 컨버터 내부에서 찰랑거리는 잉크의 양을 관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그만의 분명한 매력이 있었다. - 이때부터 슬슬 피스톤 필러 만년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그냥 일반 컨버터 방식의 만년필도 충분히 쓸만하고 오히려 경제적이고 관리하기 편하다는 걸 알게된다. - 실제로 지금은 피스톤 필러 만년필은 기피 대상이다. 관리가 어려워서;; 능력이 안 된다. 처음에는 잉크 많이 들어가서 멋있어서 썼는데 에고..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피스톤 필러 만년필은,, 펠리칸 M400, 파이로트 헤리티지92, 트위스비AL580이다.)

트위스비 AL580 - 6만원 정도?

 

파이로트 캡리스 데시모 - 12만원 정도

나의 만년필 역사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은 파이로트의 캡리스 데시모다. 노크식 만년필을 편하게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서 짧막한 메모를 하기에 최고의 편의성을 제공했다. 클립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응하면 장문을 필기하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사용하고 나서 너무 마음에 들어 연애시절의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한 펜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얼른 서둘러 선물하고 싶을만큼 좋아하는 펜이었다.

세일러 프로피트 스탠다드 - 당시 12만원 정도

사실 그 이전에 구입한 세일러 프로피트 스탠다드는 내가 가진 펜들 중 가장 가느다란 세필에 해당하는데 역시 한 때 정말 애용했드랬다. 다만 세필이다 보니까 잉크 흐름이 박해질 때가 있어서, 그러니까 잠시만 필기를 멈추면 닙이 말라버려서 최근에는 잘 안 쓰게 되는 펜이다.

영웅 616 만년필 - 1만원 이하의 가격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은 실로 영웅 616과 함께 했다. 중국산 만년필은 처음 구입한 것이고, 정품 여부 조차도 확실하지 않았았지만, 후드닙 특유의 잘 마르지 않음이 정말 매력적이었고, 후드닙 특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물 흐르는 듯한 버터 필감도 정말이지 달콤했다는 생각이다. 잉크도 상당히 많이 들어가서 만족스러웠다. 이제 컨버터 쓰는 만년필은 쓰기 힘들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다 적응의 문제이니까 다 어떻게든 적응해서 잘 쓸 것이다. 하여간 지난 일 년 동안 이 녀석으로 정말 많은 글을 썼고 덕분에 행복했다.

영생 601

영웅 만년필 덕분에 중국펜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야자 컴퍼니의 영생 601과 영생601A을 구입했다. 버큐매틱 충전 방식이 독특했고, 펜의 필감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종이에 대한 안목도 함꼐 발전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도 않는 종이에 적다가 나중에는 더블에이에 정착했다. 그리고 모닝글로리의 수첩을 해용하기도 하다가, 만년필을 공략한 어프로치 노트에 정착했다. 좋은 펜도 중요하지만 좋은 노트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은 실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만년필이야 나의 것이 되면 끝이지만 종이의 경우에는 좋은 종이를 계속 공급받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판매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

 

이만하면 만족스럽다. 좋은 펜과 좋은 종이를 가졌으니까.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나의 만년필 여행기를 기대한다. 시간이 지나면 새롭게 또 다른 펜과 종이를 만나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나는 안다. 그렇게 여백으로 남은 시간들에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것이 이 취미가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이 글은 이번 글에서 소개하지 못한 트위스비 AL580으로 섰다. 덩치 때문인지 어쩐지 에어버스380이 떠오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