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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을 어떻게 펼쳤는가?) - 정일성, 지식산업사에 대한 메모

by 통합메일 2019.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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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통찰함에 있어서 일찌감치 유교를 버리고, 무력과 외교력 그리고 이로부터 기인하는 외교력을 진정한 국력으로 팡가했다는 거싱 후쿠자와 유키치의 안목이 가진 진수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서양에 모든 기준을 맞추려고 하는 시도를 하는 마당에야 유교를 평가하는 것을 신출나게 창의적이라 보기도 힘들지 않은가?
  2. 분명히 메이지 이후 일본의 국력은 강성했고 신나게 아시아를 침략했지만 태평양 전쟁의 패전국이 되고, 전후 복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의 기형적 행태를 보이는 일본의 주류 정치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가 있었더라면 더 나은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엘리트주의의 측면에서 일본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인상을 받는다.)
  3. 메이지 유신을 위해 일본이 지불해야 했던 대갇르을 생각하면 결코 값싸지 않다. 또한 개혁과 관련해 일본과 달리 조선은 열강들의 개입이 너무 심했다. 즉 개혁을 하고 싶어도 각 열강들이 조선 개혁의 주도권을 두고 엄청나게 이권다툼을 벌일 것이기에 운신의 폭이 좁았을 것이다.
  4. 메이지 유신을 함에 있어서 일본이 직면했던 갈등의 본질이 막부와 유신정부의 세력다툼에 있다고 한다면, 조선의 경우 개혁개화를 가로막는 것은 단순한 세력 다툼에 그치는 거싱 아니다. 즉 탕평 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왕을 비롯한 온 백성에게 뿌리내린 유교라는 관념이었고, 이게 무서운 이유는 가족중심의 철학이라는 것!
  5. 정치/외교 및 지리적인 측면을 볼 떄도 일본은 성공했지만 조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은 크든 작든 늘 대륙의 간섭을 받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중국이나 조선의 영향력과 간섭이 미치기에는 바다라는 지리적 장애물이 크다.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고립되었고, 
  6. 일정 시기에 이르기까지는 동북아의 국가들 중에서는 문화적으로 가장 후진했던 곳이 바로 일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립과 방치가 역으로 서양의 접근성을 유리하게 만들어 타국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내부의 의견일치만으로 개혁에 성공한 것이다. 조선은 전적인 자율적 선택은 아니었지만 결국 청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청과 함께 패망한다. 이는 결국 동양과 서양의 싸움이다.
  7. P.124-125: 역시 그가 혐오하는 것은 반문명적인 쇄국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면에 있어서 그저 문명개화와 관련하여 상당히 청순파가 아닌가 하고 표현해본다. P.143: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여간에 자각과 각성이 중요한 것은 자명한 것이지만, 개인을 위하냐 나라를 위하냐의 차이는 오히려 극명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8.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인식의 측면에서 아직도 모자람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국가는 오래전과 같이 미명하지는 아니하다. 다만 이 정도의 발전으로도 안심할 수 없을만큼의 정치/외교/지정학적인 난점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려되는 것은 역시 이 커다란 흐름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다. 우리는 배를 갈아탔다. 양자 모두 돈과 무력에서 비등해본인다. 어떤 새로운 동력에 주목해야하나?
  9. 갑신정변이나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하여 후쿠자와는 무력을 이용해서라도 청나라를 내쫓고 강제로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하기 시작한다. 분명히 확실히 노골적이어졌다. - 문명개화를 주창하기는 하였으나, 그 문명이라는 것은 결국 파괴력을 담보하는 서구세력일 뿐이었고, 후쿠자와는 흔한 군국주의자와 다를바 없게 되었다.
  10. 이러한 면모는 이른바 계몽과 개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치열하게 경계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인류의 문명이 지향해야 하는 거대한 방향은 존재한다고 하겠지만, 그리로 나아감에 있어서 오히려 스스로를 야만으로 추락시킬만한 발상/발언 행동과 계획을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11. 아무래도 청일전쟁이 가장 큰 원흉일 것 같다. 대국을 상대로 승리를 하게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누구나 다 광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식인이었다면 그러한 광기에 휩쓸리기 보다는 합리성을 기준으로 중심을 잡아주었다면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가로 전락하는 처지는 면할 수 있었을 것.
  12. 조선에 대한 평가도 갈수록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으로 일관하게 된다. 즉 일본을 조선에 대해 은혜를 베푼 상전으로 묘사/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문명>에 대한 신념마저도 포기해버리게 된다. 점잖은 방법으로 조선을 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곧 <조선인은 떄려야 말을 듣는다.>는 생각의 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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